2015. 6. 13. 00:10 | 2차

* 원피스 60분 전력: 주제 '변화'
* 검사기도 못 돌린 글이라 맞춤법과 비문 주의
* 해리포터 '소망의 거울' 소재




  어린 날의 내가 불퉁하게 서 있었다. 푸르딩딩한 눈가와 상처나고 부어 오른 볼이 망막에 맺혔다. 또 해적왕의 자식에 대해 논한 불량배들과 드잡이질했겠지. 굳이 기억의 무덤을 파헤쳐 떠올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시절의 나는 상처가 끊일 날이 없었으니까. 걱정이 흘러넘치다 못한 사보가 날 놓치면 큰 일이라도 날까봐 웬종일 내 뒤꽁무니를 쫓아 다닐 정도로 무모했었다. 지금이라고 그런 평을 받지 않는 건 아니지만. 괜히 신경질이 나 머리에 꿀밤을 먹이듯 거울을 때렸다. 아프지 않을 게 분명한 작은 '나'는 발을 쿵 구르고 힘껏 노려보았다. 웃기지도 않았다. 코웃음을 치고 거울을 선실 구석에 세워두었다. 이상한 거울을 상대할 시간은 없었다.

"에이스으으으!!!!"
"이런."

  마르코의 목소리가 온 복도에 우렁우렁 울렸다. 내 서류를 미뤄둔 게 들킨 모양이었다. 쳇. 책상에 뒤섞어 놨는데. 빨리 도망가야 했다.


*


  선실 문을 열자 끼익 소리가 났다. 마르코가 알면 기름칠 제 때 해 두라고 또 잔소리하겠지. 한숨이 푹 나왔다. 내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선실에 발을 들였다. 뉘엿뉘엿 저무는 해가 남보랏빛으로 방을 채우고 있었다. 그나마도 빛이 들지 않는 곳은 어두워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마르코에게 잡혀 몇 번이나 얻어맞은 등짝이 아직도 벌겋게 손자국이 나 있겠지. 누가 1번대 대장 아니랄까봐 혼낼 때도 무장색을 씌우나. 아버지의 문양을 문신으로 새긴 게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매번 이렇게 맞았다간 남아나질 않았을 거였다. 그나저나, 아버지가 불렀었는데. 보면 웃기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조금 그러니까…. 언제쯤 자국이 사라질까? 확인하고자 거울로 향했다.

  실수를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 거울은 일반 거울이 아니었다. 판판한 유리를 사이에 두고 사보와 루피, 그리고 과거의 내가 서 있었다. 사이좋게 ASL이 쓰인 깃발을 들고 개구지게 웃는 낯은 너무나도 그리워서….

"…사보."

  코를 훌쩍 삼켰다. 이 망할 거울은 사람을 농락하는 건가. 만든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악취미다. 이런 게 '소망의 거울'이라고? 손바닥과 맞닿은 거울이 싸늘했다. 그래. 사보가 보고 싶긴 했다. 하지만, 하지만 사보는 죽었다. 출항하려고 띄운 배 위에서, 17살이 되길 기다리지도 못하고 끔찍한 집구석에서 뛰쳐나온 사보는 그대로 바다에 가라앉았다. …죽은 사람은, 볼 수 없다. 이렇게 보아봤자 현실만 깨달을 뿐이었다. 차가워진 손바닥과 달리 이로 눌러 압력을 받은 입술에서 뜨끈한 피가 흘렀다. 주먹쥔 손으로 피를 훔쳐내고 거울을 쾅 쳤다. 점점이 튄 피가 흘러내려 사보의 금발 위로 번졌다. 아차 싶어 황급히 다른 손으로 닦아냈지만 불그스름한 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사보는 괜찮다는 듯 씩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견딜 수 없어 사보에게 등을 보였다. 식힐 게 필요했다.

  화장실에 있는 거울은 멀쩡했다. 연거푸 세수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이 비쳤다. 그 안의 나는 작디작은 사보와는 달리 다 큰 성인이었다. 여러 번 눈을 감았다 뜨고, 눈꺼풀이 쓰라릴 정도로 비벼도 사보를 두고 나이 먹은 난 변하지 않았다. 젠장할 거울. 선실에 있던 거울이 머리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이걸 준 선원이 뭐라고 했더라? 소망을 보여준다고 했었나? 가물가물해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게 그런 거울이라 친다손 해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소원을 뭐라고 생각하길래 이런 게 비춰지는 건지. 흰 수염을 해적왕으로 세운다. 그것이 내 꿈이었다. 확실한 미래이자 단 하나의 소망이었다. 그리고 죽은 사람을 보고 싶다면 사보뿐만이 아니라 내… 어머니도, 나왔어야만 했다.

  그러니 이 멍청한 거울은 망가진 게 틀림없었다. 소원이니 소망이니, 그딴 건 전부 램프의 지니 같은 헛소리였다. 박살낼까 하다가 배 위에서 거울을 깨면 좋지 않다는 속설이 떠올랐다. 제일 가까운 섬도 두 주는 족히 걸리는 거리에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거울을 뒤집어만 두었다.


*


  마침내 물자 보급을 위해 섬에 정박했다. 그 사이 몇 번이고 보고 싶은 욕망을 내리눌러야 했다. 사보의 사진 한 장조차 가지고 있지 않아서, 기억 속에 있던 사보가 너무도 선명하게 떠올라 꿈까지 꿀 정도였다. 하지만 보내 주어야 했다. 그게 맞는 거니까. 맞는 거지만…. 아무튼 긴 항해동안 겨우 참았다. 이제는 내다 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거울을 돌려 들었을 때, 나는 또 마주해야 했다. 

  이번에는 아버지였다. 큼지막한 의자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곁에는 대장들이, 또 다른 형제들이 서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는 나도… 있었다. '나'는 삿치와 어깨동무를 하고서 나를 향해 웃어 보였다. 동시에 형제들이 제각기 여상스러운 모습으로 웃거나 손을 흔들거나 하며 내게 인사했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내 소망?

  그들에게 밝은 낯을 돌려주기도 전에, 손에서 거울이 미끄러졌다. 와장창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진 거울의 조각이 선실 바닥에 흩어졌다. 서둘러 커다란 조각을 들여다 보았지만 한 부분만으로는 내 얼굴만 비출 뿐이었다. 무언가 놓친 느낌이었다. 발등에 떨어지는 액체의 느낌에 파편을 내려두고 손을 살폈다. 이미 오랜 기간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은 고작 거울에 다쳤다고 속살을 보이지 않았다. 피는 아닌데.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목재에 알알이 박힌 먼지같은 파편 위로 짙은 색의 동그라미가 생겨났다. 나, 울어…?

  왜 우는지, 알 수 없었다. 놓친 그 사이 어딘가에 둥둥 떠다니고 있을 게 분명한 감정에 나는 그저 거울을 쓸어담을 뿐이었다. 언젠가 깨달으리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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